아름다운 글

동 유럽 여행기 12박

웰리스1004 2019. 3. 28. 18:51

내려 오면서

내려오면서 건너편 언덕에 “ 호헨 슈반가 구성”을 바라보았다.

언덕 위에 노란색을 띠고 있어 화려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곳은 바이에른 왕가의 황태자이며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인

믹시 밀리언 2세가 1832~ 1836년에 신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한 성이다.

백조의 성과 알프스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어, 루드비히 2세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며 환상의 세계를 꿈꾸게 되었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설계하게 되었다 한다.

우리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하고 800년 역사를 가진 티롤 지방의 주거지 동계 올림픽의 도시 오스트리아 인스 브르크로

이동하게 된다.

퓌센에서 인스브루크까지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로 가는 내내 하얀 눈으로 싾인 도시의 모습들이 광활한 스키장을 연상시켰다.

설경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울까, 겨울여행의 진수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설경으로 아름다운 눈길을 달려 독일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들어섰다.

인구 12만인 인스 브르 크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인 티롤 지방의 중심도시로서 해발 574M 고원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인스 브르 크란” INN에 걸린 다리”라는 뜻으로 이름 그대로 시내 한복판에는 "인" 강이 멀리 모르트 케테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예로부터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재 못 미쳐 있는 주막 마을로 인적이 끊이지 않았다.

도착하자 바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관광을 하였다.

인스브루크 시를 가로지르는 중심 거리에서 일행과 사진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생가 앞에서 사진도 찍고, 헤어초크 프리드리히 거리의 막다른 곳에서 인스브루크의 상징인

금 빛 찬란한 황금 지붕 관광도 하고 호텔로 들어갔다.


여행 4일째 220일 월요일 "인스브루크에서 잘츠부르크"까지


백조의 성은 음악가 바그너를 좋아한 국왕 루드비히 2세가 오페라 로엔그린 중 백조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은 성으로

중세의 분위가 느껴진다.

1869년 착공해 1896에 완공, 갑작스럽게 루드비히 2세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많은 관광객이 둘러보는 성안 16개의 방은 왕이 죽기 전에 완성 되었다고 한다.

동화 같은 삶을 원했던 루드비히 2세의 화려한 성을 보기 위해 매년 수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 

전설처럼 신비로운 꿈과 숨을 멋게 하는 주변 경관 또한 사람들을 이 곳으로 오게하는 요소 이기도 하다.




 

 여행 4일째 2월 20일 월요일 "인스부르크에서 짤쯔부르크"까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창 밖을 보았다. 이제 추위도 봄의 기운으로 느껴진다.

무척이나 춥다던 날씨가 봄처럼 포근했다

식사를 하고 티롤 알프스의 중심지인 바텐에 위치한 SWAROVSKI 크리스탈 월드에 간다.

입구,  거인의 머리를 통해 입구로 들어가면 음악과 향기가 작품들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볼수가 있었다. 

찬란한 빛, 크리스탈의 아름다움에 눈을 뗄수가 없다.

높이 11미터, 길이 42미터, 12톤의 거대한 크리스탈 벽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많은 작가들__ 살바도르 달리, 게이트 하림, 니키데상 팔레

그리고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등의 크리스탈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별도의 전시실에서는 스와롭스키 샵이 있어 쇼핑도 하고 나왔다.

 

우리 일행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의 배경으로 알려진 짤쯔부르크로 이동하였다.

짤쯔부르크는 소금성이라 하며,  호수 80여개의  알프스 계곡물이 흘러서 된 호수라 한다.

바바리아지역 으로 유럽의 로마로 불리워 진다.  잘자크강이 흐르고 있으며, 소금의 중요성을 알게된 로마인들이

짤쯔부르크로 주교들이 게속 줄을 이었다 한다.

 

그리고 유명한 음악가 모짜르트가 1756년에 이 곳 짤쯔에서 출생.

궁중악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당시에,  악보를 수정하지 않는 작곡가 천재였다.

또한 "밀로스호면 감독의" 아마데우스 영화촬영은 오스트리아가 아닌 체코에서 촬영했다 한다.  

  

 

이곳에서 오직 한 집,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인 식당에서 돼지 불고기와 된장찌게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 한 켠에 피아노, 바이올린 악기가 있고 이곡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 80여명의 음악 유학생들이

자주 들리는 곳이라고도 한다. 

식당에서 나와 버스에 오르니 20일 오후 2시15분,  한국시간 20일 10시 20분 미라벨 정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내를 출발~~

이 곳의 대표하는 관광지 호엔짤쯔부르크 성과 바로크식 미라벨 정원을 관람하였다.


 

볼프 디트리히 주교는 성직자이면서도 평민의 딸이었던 살로메 알트를 너무나 사랑했다.

주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난으로부터 자신의 사랑을 지켜 마침내 살로매와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며

1606년 그 가족들을 위하여 잘자흐강 주변에 알텐아우라는 궁전을 지었다.  

물론 카톨릭 종교 단체와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고 그는 말년에 쓸쓸히 요새에 감금당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후대의 주교들은 이 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 궁전과 정원의 이름을 미라벨 아름다운 전경이라고 바꾸었다.

다음에는 대성당과 구시가지를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이제까지 수고한 기사분 "졸탄"이 다른 분과 교체 된다는

이야기에 아쉬움을 박수로 대신했다.

 

짤츠부르크 남동쪽에 위치한 짤쯔캄머구트은  산과 많은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빼여나다.

이곳의 호수와  푸른 산의 풍경은 1965년에 제작된 사운드 오브 뮤직 으로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한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많이 내린 눈으로 하얗게 묻혀 있었다.

내려서 구경을 하고 얼어 붙은 호수를 바라 보았다. 지나간 여름의 낭만도 추억도 얼어 붙어 지금은 침묵만이 고요했다.  

볼프강 호수를 끼고 짤쯔감머구트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세렐케기" 마을앞 호수를 거닐며,   간혹 불이 켜진 상가에 들려서

구경도 하고 기념품 쇼핑도 하였다.

어느새, 하얀나라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들이 호수에 잠긴채 하얀 눈속에서 우리 여행객의 피로를 호수에 던져 버리고  추억은 가슴에 안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현지 현재 시간 저녁 20일 18시04분  한국시간 21일 새벽 02 06분.

 

 

  여행 5일째 21일 화요일   "짤쯔부르크에서 비엔나"로--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비엔나로 출발하였다. 짤쯔에서 비엔나까지는 3시간이 걸렸다.

하이웨이를 달리는 차창에 기대어 잠시 잠을 청했다.

창밖엔 눈이 많이 싾였다. 맑은 햇빛이 내리 쬐고 하얀눈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로 여행 5일째, 아직도 7일의 일정이 남아 있어, 항가리/ 폴랜드/ 체코로 마음이 바쁘게 날아간다

끊임없이 보이는 설원에 유럽풍의 아름다운 집들이 한가로이 누워있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의 거리가 정말 예술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비엔나의 관광의 시작점이라고 하는 케른트너 거리를 걸어서 관광을 하였다.

세게적으로 유명한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에서 성 슈테반사원 광장에 이르는 비엔나의 중심가로

고품질의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상점들이 즐비하여 쇼핑의 파라다이스라고 할 수 있다. 

거리에서는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상품, 가치있는 골동품 또는 재미있고 앙증스러운 기념품들이 사림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있다.


관광을 하고 저녁에는 그린찡 마을에서 현지식 ( 호리이게) 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하면서 우리의 가락이 연주되여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오늘도 모든 관광이 끝나고 호텔에서 여정 5일째의 밤을 보냈다.

 

여행 6일째 22일 수요일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분수가 있는 궁전의 의미가 있는 쉔부른 궁전과 정원을 관람하기 위해 호텔을 출발 하였다.

 

함스부르크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바로크 양식의 매우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쉔부른 이라는 이름은 1619년 황제가 사냥도중에 아름다운 샘을 발견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외부 건물은 크림색 마리아테레지아 엘로우라고도 불림이며 내부는 18C후반에 니콜라우스파카시라는 건축가에 의해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동양자기나 칠기,페르시아의 세밀화 등으로 우아하고 호화롭게 로코코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왕궁정원은 바로코 양식으로 단장되었고 넵튠 분수를 비롯한 여러 개의 분수와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한 44개의 대리석상이 있다.

그 외에 그리스신전 양식의 글로리에데,  궁정마차 박물관,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온실과 동물원등이 있다. 

 

우리는 버스로 이동, 다음 관광지 요한 스트라우스 2세, 슈베르트, 유명한 음악가의 묘지를 방문하여 둘러 보았다.

모짜르트는 5세에 음악을 시작하여, 6살에 세게연주 여행을 하였다. 626곡을 작곡하였고  단조의 슬픈음악이 3곡정도 였고,  

음악의 장르는 발랄 경쾌하였다.

후에 독일 출신의 베토벤이 오스트리아로 모짜르트를 만나기 위해 온다.

모짜르트는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표현이 부족하였지만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베토벤이 오스트리아에 38년정도 거주하였고 슈베르트는 생전에 존경하는 베토벤옆에 묻히고 싶다고 하여

유언에 따라 현재 함께 안장되어 있다.

슈베르트는 31살에 매독에 걸려 아깝게 죽었다.

 

다음으로 스테파논 성당으로 이동, 마침 미사중이므로 경건한 분위기였다.

모짜르트가 결혼식을 하고 훗날 장례식을 하던곳.

장례식에는 악처로 이름난 부인이 참석하지 않아 슬픈 장례식이 되었다고 한다.

외롭게 이 생을 떠난 모자르트의 생이 안타깝다.

그리고 스테파논 성당은 황실가족이 죽었을때 장례식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날씨가 무척 차다. 밍크 볼레로로 춥지 않게 입고 사진도 찍고 관광을 하였다.

비엔나에서는 한국인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상가에서 달콤한 또까인 와인과 맥주를 사고 오스트리아 관광 안내를 해준

조영효씨와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현지 시간 22일 (수)  14시3분 부다페스트로 이동~  시작하였다. 국경까지 2시간정도 소요예정이다.

얼마쯤 달렸을까 창밖으로 석양이 물들고 있다. 창가에 기대여 여행 6일째의 피곤을 단잠으로 달랬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피아노가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음악이 화려한 꽃을 피웠다.

항가리 음악가 쇼팽과 리스트의 피아노곡의 아름다운 선율속에 피곤한 몸을 기댄다.

출발한지 1시간만에 항가리 국경에 도착, 입국심사가 시작 담당자가 올라와 여권을 확인후 도장을 찍는 것으로

통과되었다

.

항가리를 달리며 항가리의 무곡을 들으며, 창밖의 풍경에 그동안 여행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썰렁한 느낌이었다. 도로나 들판엔 정겨움 보다는 삶의 치열한 흔적이 보인다.

세계 자살율 1위 나라, 항가리 무곡의 작곡가 리스트와 쇼팽의 유명한 음악가가 항상 어둡고 우울한 날씨에 아름다운 선율을

건반으로 옮길수 있는 위대한 음악가가 이 나라 항가리 출생이다.  끝없는 넓은 들판의 행진 2시간 정도가 지나니,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였다.

부다페스트 시내로 들어오니 밖은 어두워 지고 화려한 불빛이 들어오니 세계 어느 도시와 다를바가 없다.

칼텐베르크 식당으로 이동 글라쉬 스프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호텔로 이동하는 거리에 환한 가로등이 들어오고 다뉴브강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부다쪽 호텔에서 쉬었다.

호텔에서 바라보니 엘리자베스 브릿지에 화려한 불로 장식되어 정말 아름다웠다.

항가리에서는 운행중 핸드폰하다 걸리면 벌금 120유로, 한국돈으로 14만원정도 된다고 한다.

항가리도 교통은 복잡하였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교통의 혼잡은 비슷하였다.

피곤한 오늘도 이제 자고, 내일이면 항가리의 관광을 하게 된다.

 

 여행 7일째 2월 23일 목요일 "부다페스트에서 타트라"




일어나니  날씨는 흐리고 비가 눈이 올 것 같다. 호텔 부페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다른곳과  다를바는 없지만 사람들이 무척이나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시간이 여유로워 호텔에서 간단히 쇼핑을 하였다.

동 유럽의 특색은 핸드메이드 제품이 많았다.

항가리는 크리스탈제품이 유명하다고 한다. 몇가지 챙겨서 관광길에 올랐다.

 

1989년에 항가리는 자유개방 문을 열었다. 항가리의 현재 물가가 많이 올라 있다.

물가가 2배이상, 2003년도엔 GNP가 8300불, 항가리 서쪽이 잘산다. 오스트리아와 가깝기 때문에

사회복지가 잘되어있다.

국가에서 교육도 재능도 발굴하고, 8시간 노동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1948년 공산화 되면서 지식인층이 많이 도망갔다. 항가리의 머저리족이 전세계를 강타하며 사는

이동민족이고 산적이었다.

떠돌이 하며 살다가 항가리에 정착, 켈트족 슬라브족을 물리치고 여기에 정착 오늘의 항가리가 되었다.

유럽에서 영국 다음으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나라다.

 

부다에 위치한 어부의 요새는 레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뾰족한 고깔 모양의 일곱개의 타워로 설계되어 있고 

각 타워들은 수 천년 전에 나라를 세운 일곱개의 마자르족을 상징한다.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 교회까지 벋어있는 계단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만들 정도로 아릅답다.

이 곳에서 다뉴브 강변의 페스트 지구의 도시와 넓게 펼쳐진 항가리 평야를 볼 수 있다.

   

마차시 사원,  13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항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이름은 1470년 마차시 왕의 명령으로 교회 청탑이 증축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세기에 부다가 터키에 점령당하면서 모스크로 변했다가 17세기에 다시 카톨릭 교회로 돌아왔고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부다왕궁  왕국의 언덕 남쪽에 있는 네오바로크 양식의 부다 왕궁은 부다베스트의 상징이다.

역사 박물관, 항가리 노동운동 박물관, 국립 박물관은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국립박물관에는 11세기부터

현재가지의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왕궁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195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겔레르트 언덕은 서울의 남산처럼 부다베스트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 왕궁의 언덕 남쪽에 있는

해발 235m의 바위산이다.

겔레르트는 이 언덕에서 순교한 이태리 선교사의 이름으로 언덕 중턱에는 이 겔레르트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거 세워져 있으며 페스트쪽에서 올려다보면 특히 잘 보인다.

항가리 시가지를 한 눈에 보며  항가리의  추억을 담았다

.

점심식사후 영웅광장에서 사진촬영을 하였다. 항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기념비가 있는 광장이다.

중앙에 있는 36M의 원주기둥 꼭대기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고 밑의 받침대에는 마자르족의 족장 아르파드와

항가리 각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 6명의 기마상이 있다.

원주 양 옆의 열주에는 항가리 역사에 남은 국왕들상들이 쭉 늘어서 있고 항가리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운

라코치와코슈트등 근대지도자 14명의 상이 있다.

 

항아리 부다페스트 거리 관광과, 짦지만 반나절 관광을 하고

비교적 항가리의 문화유산이나 거리의 모습이 웅장하고 무거워 보이는 것은 공산국가의 남겨진 모습이라 그럴까.

항가리에서 점심을 먹고 동구의 알프스로 알려진 슬로바키아의 타트라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항가리를 떠나고 있다.

현지에서 한식으로 식사,  가이드와 이별 인사를하고 슬로베키니아로 가기위해 현지시간 13시33분,

한국시간 저녁 21시35분에 부다페스트를 출발하였다.

 

전세게 스키 매니아들이 찿는다는 우리나라의 5분이1 정도의 땅, 작은나라 독일령에서 독립한 나라 펄란드를 가려면

스로베키니아 타드라 지방을 경유해야 한다.

어두어진 밤거리, 산맥을 넘어 폴란드를 가려면 5시간의 긴 여행이다.

가이드가 지루하다며 "사운드오브뮤직" 영화를 보여 주었다. 오랫만에 보는 영화지만 오스트리아 촬영지를 보고

감상하니까 실감났다.

눈이 엄청나게 싾인 산맥을 넘는 버스가 안전하게 가길 기도하면서  영화도 보고 창밖의 아스함도 경험하며

얼마를 달렸을까, 늦은 밤, 타트라 산맥을 무사히 넘어  POPLAD 스키대회 지정 도시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레베카지방, 성안의 SATel( 싸텔) 호텔 별 4개인 예쁜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다. 어디를 가나 눈 세상이나 보니 마치 우리는 백설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동화같은 분위기에서 마음은 들뜬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공주가 되어 있었다.

아주 작은 호텔에서 간단히 식사가 끝나고 폴란드 크라코프로 가기 위해 출발.

 

여행 8일째 2월 24일 금요일.  "타트라에서 크라코프까지 "

 

EU 연합 인구 4억5천만명. 12개국 영국/독일/불란서/이태리/오스트리아/체코/폴란드/스웨덴/네델란드/항가리/

 

출발하는 차창 밖 멀리 타트라의 5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폴란드와 스로베키니아가 공유하는 산맥, 유일한 대표 타트라 산맥이다.

출발시간 현지 24일 오전 09시24분/ 한국시간 오후 5시25분 타트라의 아름다운 산을 넘기 시작했다.

저녁에 넘는 산맥보다 깊은 산의 아름다움을 보며 넘다보니, 공포심도 적고 울창한 산의 우람한 모습에

감탄을 하며 신나는 8일째 여행의 깃발을 올렸다.

차내에서는 카사불랑카의 감미로운 음악이 분위기를 맞추어 흘러 나온다.

 

10시20분경 국경에 도착, 간단히 약식절차로 폴란드로 진입했다.

죽쭉뻗은 나무와 눈이 부시도록 현란한 햇빛을 받으며 폴란드의 타트라 산맥 마지막 위치를 넘고 있다.

중부유럽 대 평원에 위치한 폴란드, 폴스카(평원) 정사각형의 땅 모양을 갖고 있다고 있다.

북쪽에 발틱해가 인접해 있으며 빙하 호수가 많은 나라, 지하자원이 엄청난 나라, 최대 생산의 보석 "호박"의 생산지다.

타트라에서 크라코프까지 4시간을 달려서 도착하였다. 온통 산허리가 스키장이다.

굉장히 큰 도시로 가이드와의 미팅장소로 이동하여  조금 기다려서 만났다.

크라코프 중세도시의 바벨론성이 보이고 강이 보이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폴란드는 남부 타트라 지역만 산이다. 우리나라 보다 3배, 인구 4000만, 바르샤바 인구는  2백만이다.

슬라브족으로 노르웨이 동유럽에 침략 당시 바이킹, ( 슬라브/슬래비-- 노예)

 

이곳의 최대 관광지 소금광산을 보기위해 이동, 독일광부의 안내로 지하 145M까지 인솔하에 우린 질서있게 따라 내려갔다.

나무계단으로 지하 80M까지 계속 내려갔다.

광부들이 소금을 채취하여 운반 하던 길이 열악하게 되어 있어 그 당시의 광부들의 열악한 노동 현장에 놀랐다. 

경악한 것은 그 아래 수십미터의 낭떠러지에 현기증이 났다.   수십 미터 아래 소금으로 성당이 지어져 있고,

예수상과 최후의 만찬 그림은 놀라웠다. 예수님이 죽어 부활하던 조각상이 최고의 걸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지하 120M, 130M, 140M 에 쇼핑점과 식당과 , 커피숍이 있었다. 

우린 더 내려가서야 145M 지점에서 초고속 승강기로 순식간에 지상으로 올라왔다.

 

다음엔 바밸성으로 갔다. 석회암 언덕의 성, 1000년된 성이 있었다.

성안에는 왕궁과 성당이 있다. 성 앞에는 비슈아 강이 흐르고  흘러온 물이 바르샤바로 거쳐서 북해로 들어간다.   

긴 강이다.

소금광산을 다녀서 시내까지 40분,  구시가지 관광에 10분 거리를 걸어갔다.

성당이 있는 곳, 광장에서 사진촬영과 중세도시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거리  샵에서 호박과 나무목각,  

가죽제품을 보며 즐겼다.

판매하는 주인들의 태도가 사회주의 국가 잔형이 남아 있어, 반기거나 적극적으로 판매를 하지 않아, 자유 민주주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에 한국교민은 16명이다. 외국어대 폴란드어과 출신의 이상용씨를 만나서 안내를 받았다.

염려했던 것 과는 다르게 모든 여건이 Best는 아니지만 거부감이 없이 여행하면서 하루를 쉬기에 정말 괜찮았다.

호텔에 들어와 지하1층 바에서 맥주1잔과 여행에서 만난 일행과 함께 1시간 정도 담소를 즐기다, 룸으로 돌아와

오늘 8일째 여행의 하루를 마감했다.

 

 여행 9일째  2월 25일 토요일 "크라코프에서 브르노까지"

 

폴란드는 한국보다  3배의 땅이 넓다. 현지시간 폴란드 09시 출발, 한국 25일 오후 5시15분.

선박 세계 1위/ 자동차 6위/ 반도체 1위/ 철강 2위의 나라 다.

나라의 경제발전은 그 나라의 시장규모다. 동구유럽의 중심, 폴란드 인구가 많고 중개무역발달  1억 시장이다.  

시베리아 벌판의 대륙성 기후, 북쪽 발틱해, 해양성 기후의 교차.

주변국 동쪽엔 시베리아, 북쪽엔 스웨덴, 남쪽 함스본가 오스트리아, 서쪽으로 독일이 있다.

"유럽에서의 미인국가는--- 러시아와 폴란드.     미인이 없는 나라--- 독일, 영국

잘난 남자는 ----이태리, 독일.     못난 남자는----폴란드'

가이드가 재미있는 데이타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차별이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도 설명도 했다.

폴란드 사람들은 다혈질이 많고 감정기복이 심하다. 1989년에 한국과 수교를 했다.

바웬사/ 교황2세/ 퀴리부인/ 코페니쿠프/ 쇼팽등 위대한 위인이 출생한 나라 폴란드.

 현지시간 폴란드 시간으로 11시 51분(25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관람하러 버스가 이동하였다.

 크라코프 서족으로 61km 떨어진 오슈비엥침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악명이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워져 있다.  

총28동으로 되어 있고 유태인 150만명을 포함해 약 400만명이 목슴을 잃은 곳이다. 

발간벽돌 건물로 되어 있으며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용소 입구의 철문에는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 ( 일하면 자유로워진다.) 라고 써있고  그 유명한 나치가 개발한

가스는 한 통으로 400명을 죽일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곳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의 20배 규모에 달하는 제 2의 수용소이다.

이곳의 입구는 " 죽음의 문" 이라고 불렀으며, 열차 노선이 끝나는 부분에 국제 위령비가 있다.

돌아보는 동안 많은 희생자의 머리칼과 휴대했던 가죽가방, 그리고 안경, 운동화와 구두가 지금도 먼지속에

그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벽보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희생된 가족도 있어 마음이 뭉클했다. 

깨스실에서 희생된 시신들이 4구 8구씩 쓰레기처럼 소각되었던 현장에서는 제대로 볼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하얀 눈 속에 빨간벽돌 건물이 흉물스럽게 서있고, 관광객외에 발길이 없는 황량함에 을씨년스러웠다.

가슴이 답답하고 토할것 같은 메스꺼움에 한 동안  서 있었다.

이 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무엇을 느끼고 갈까? 

일행들은 한참동안 말을 잃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했다.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수용소의 생각에 먹을 수가 없어 과일만 먹고 말았다.

 

이제 브르노로 가기위해 5시간 여행의 출발을 하였다. 

출발하면서 수용소 방문후라 "인생은 아름다워"( 라비따벨라) 영화를  감상하며 떠났다.

 

이제 마지막 여행지 체코의 프라하를 가기위해 브르노로 간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매우 춥다.

창밖에 시선을 두고 가끔씩 영화를 보며 이태리 영화 " 인생은 아름다워"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태리영화 라비따벨라의 " 인생은 아름다워">


* 영화소개 *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는 잔혹함이__                             
아유수비츠 수용소에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공포와 죽음의 순간을 넘나들며 아들과 게임을 하며,
하루하루 아들에게는 죽음과 수용소의 의미를 재미나게
게임으로 보여주며, 수용소의 하루하루, 삶과 죽음으로
어른들의 세계을 모르는 아들에겐, 학살의 의미가
수용소의 잔혹함이 게임이었다.

매일 삶과 죽음으로 공포의 세계는 아들에겐 게임이었기
에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픔을 이겨내며 여성
포로수용소에 살아 있을 부인과의 아들의 만남이 소망이
었다. 독일인의 유태인 잔혹한 학대 행위를 모르게하며
지내도록 배려하는 부정의 진한 사랑이 마음의 감동을
주는 영화다. 독일이 패망할때 독일인의 학살을 피할수
있게하여 아들을 살려 엄마를 만날수 있도록 죽음의 순
간을 모면하는 처절함이 주인공 귀도가 학살 당하는 장
면에선 가슴의 진한 감동과 눈물을 흘리게하는 영화다.

동유럽여행을 하며 아유수비츠의 현장을 보고 프라하로
가는 여정에서 또 한번 볼수 있었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
워"는 언제나 감동이다.
가족의 의미를 알게하고 부모의 사랑을 통해 죽음앞에서
도 부모의 사랑은 위대함을 보여주는 가족영화다.

 

가슴 뭉클한 감동의 영화다. 수용소를 보고 감상한 영화라 실감이 더해 마음속 깊은곳에 자리한다.

현지시간 해가 저물어 구름속에 빛이 숨어들고 세상은 어둠이 서서히 오고 있다.

16시 36분 브르노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국도로 진입하여  수용소에서 출발 5시간이 지나서야

체코 당을 밟았다.

긑없이 계속되는 설원의 아름다움, 끝없는 행진은 유럽이 아니면 볼수 없는 정경이다.

구름속으로 숨어버린 빛이 살짝 얼굴을 내밀어,  브르노의 석양을 볼수 있어 행복했다

.

17시 25분에 체코의 브르노에 도착. 브르노는 모리비아 지역이 있으며 식사전에 맥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어 답답한 마음을  

맥주로 달랬다.

브르노는 상업과 공업도시이라 게르만권의 나라 300년 통치를(오스 함스브왕가의 통치) 하였다.

" 체스키크롬로프" 라는 작은 도시에서 브드바르 맥주가 나온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진상되었던 술이

브르바르( 버드와이져 맥주)다.

 

서둘러서 체스키크롬프트로 출발,  긴 여정의 나그네는 지친 몸을 버스에 실고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 10일째 2월26일 일요일  "브르노에서 체스키크롬프트까지"

 

현지 브르노 시간 08시 36분,  한국엔 일요일 26일 16시 40분 홀리데인 호텔을 떠나, 게속 눈이 내리는 여행을 했다.

이번 여행은 눈과 함께 처음부터 함께해 추억이 다르다. 하얀 눈 마음에 담고 머리에 이고 하여튼,  별난 추억에 기분이 유쾌했다.   

마치 눈 설매로 이동하는 착각을 느낀다.

체코의 겨울여행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10일째 날의 여행 약간 지루함도 들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움은,

피로도 잠시 금방 날리고 2일의 마무리 최선을 다해 많이 보아야지----

당이 좁은 한국 땅에서는 보기힘든 광활한 설원은,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

가끔씩 잎이 다 떨어진 나목이 경계선을  긋고 있다.

달리는 차에서 내려 체코의 나그네가 되고 싶다. 저 넓은 눈길을 걷고 싶다.  이제 목적지가 가까워 옴을 느낀다.

하얀 눈위에  색채가 화려한 지붕에, 유럽풍 동화속의 집들이 보인다.

 

체스키크롬로프 성, 이  성은 13세기 중엽 대지주였던 비텍가가 불타바강이 내려다 보이는 돌산 위에 고딕 양식의 성을

건설함으로써 이 도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을 드나드는 나무문을 붉은 문이라고 하며 이 문을 통과하여 안쪽정원 정면에 서 있는 건물이 가장 오래 되었다.

15000명의 인구가 있는 도시 대부분 관광업종에 종사하며 성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1년중 6월에서 10월까지만 개방한다. 개방이 안되는 시즌이라 외곽에서 구경을 하고 점심은 엣날 귀족이 살던 집에서

식사를 했다.

이곳에는 밤새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 발이 날리고 있다. 호텔 주위에서 설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마지막

여행지 프라하로 출발했다.

프라하가 가까워 지나 보나, 도착이 되는 시간에 밖은 어둠이 내리고 있다.  체코시간 17시48분 이다 .

저녁을 먹고 일행들끼리 방에 모여서 이번 여행의 휴식을 했다. 

 

 여행 11일째  2우러 27일 월요일.    "프라하에서 "

 

 

-- 캬를교---

불타바강이 흐르고

 

 

프라하--   체코의 수도이며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러운 고도 프라하는, 작은 골목 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배어있다.  

또 시내 곳곳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많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하는 프라하 성으로 갔다.

"프라하의 연인"의 촬영지이기도 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관광객이 많이 모여 들어 혼잡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주인공 대통령의 딸, 윤재희( 전도연) 가 찍었던 자리에서 사진한장 찰칵.

 

* 프라하 성--프라하의 대표적 관광지인 프라하성은 9세기에 이미 교회가 있던 자리였는데 9세기에 보르지보이

왕이 건설한 성에 기초하여, 14세기의 갸를 4세 시대에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예전에 체코의 왕이 살았던 곳으로 1918년 체코 대통령의 거주지가 되었고 로얄정원과 남쪽 정원, 갤러리,

앤 여왕의 여름 별장은 여름에 개방한다.

 

* 성 비트대성당--- 총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0m, 탑높이 100m의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 성곽 안에 위치해 있다.

성당의 서쪽입구 청동문에는 교회의 역사에 대해 묘사되어 있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천부적 재능의 체코 예술가들에 의해 완성 되었다.

 

* 황금소로--- 동화의 세계처럼 형형색색의 아담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로 후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프라하 성에서

내려오는 좁은 길을 말한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동화에 나올 법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인데, 원래 이곳은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이후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 집들 사이에 있는 22번지가 실존주의의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500년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16c 옛날 모습을 보전하고 있고 이제는 서점, 레코드가게, 기념품점 등의 상점들이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복잡한 곳을 지나서 카를 4세가 당시 최고의 토목 술을 동원해 1406년 완성한 프라하의 낭만을 느낄수 있는 카를교를 관광했다.

516m의 길이에 16개의 기둥과 3개의 브릿지 타워가있다.   구시가지의 브릿지 타워는 많은 조각상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브릿지 타워로 꼽히고 있다.

바로크 시대 18c에 만들어진 30개의 조각상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조각상은 Matyas Braum과

E M. Brokott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구시가지로 가서 관광을 하고 80m의 쌍동이 청탑이 있는 틴( 세관) 교회로 가서 관광을 했다.

황금장식으로 만들어진 교회로 조명을 밝힌 야경이 아름다워서 언제나 붐빈다.

 

그리고 구시청사가 있는 곳에 천문시계가 있다.  그곳을 지나서 일행은 프라하에서 마지막 쇼핑을하고 12박 긴 여정의

스케줄이 마무리되고, 

저녁 19시 50분 KE936편으로 프라하를 출발 안천공항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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